로마제국의 멸망(476), 게르만 민족의 이동 이후에 유럽은 얼마 동안 문화 부진의 시기에 들어선다. 이 무렵의 문화는 대륙이 아니라, 오히려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에서 어느 정도 유지되었다.
알드헬름(640경-709), 베다(673-736)는 초기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이 동안 북갈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프랑크 왕국이 발전하고, 카를 대제(742-814) 때 당시의 유럽을 거의 통일하였다. 대제에 의해 시작된 학예의 전개는 중세 유럽에 최초의 문화를 개화시킨 것으로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 불린다. 카를 대제의 본래 의도는 성직자의 교양을 높여서 바른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시키려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우선 정확한 라틴어 습득을 요구했다.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본래 일은 언어 개혁이었다. 대제는 이 운동의 리더로서 잉글랜드 북부의 요크 출신인 아르퀴누스(735경-804)를 초빙했다. 곧 중세 초기에 섬나라에 보존되었던 문화가 대륙에 이식되어 ‘카롤링거 르네상스’로 개화된 것이다.
아르귄은 다방면의 작품을 남겼으나 학자라기보다는 교육자이다. 대제의 학예부흥에는 유럽 각국의 출신들이 참가하고 있다. 북이탈리아에서는 역사가 파울루스 디아코누스(720경-797경), 독일에서는 대제의 전기작가 아인하르트(770경-840) 등이 왔으며, 시인 오를레앙의 테오도르프(821 사망)는 에스파냐 출신의 서고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