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수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국가정보원은 조직적으로 여론조작 공작을 벌임으로써 대통령선거에 개입하였다. 국정원은 인터넷과 SNS상에서 은밀하고도 조직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국민 여론의 조작을 시도하였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젊은 층 우군화 전략’을 행동지침으로 내세워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들을 종북좌파로 몰아세웠으며, 소위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을 통해 대국민 여론조작에 국정원 직원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였다. 정보기관의 구시대적인 정치개입이 청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노골적으로 자행되어 왔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을 통해 명백하게 드러났다. 국정원은 비단 대통령선거에만 개입한 것이 아니다.

박원순 제압 문건, 반값등록금 관련 문건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명박 정권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일상적인 업무였다. 대북 및 해외정보의 수집이라는 본연의 업무는 망각한 채로, 국정원은 이명박 정권 및 특정 정치세력의 주구가 되어 정권 안보를 위해 국민을 공작의 대상으로 여기고 국민들의 정당한 정치적 주장을 탄압하는 일에 몰두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원세훈 전 원장이 종전 조직을 확대개편하여 만든 심리정보국의 주도로, ‘종북 척결’이라는 구호 하에 국민을 섬멸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반민주적인 작태까지 저질러 놓고도 대북심리전이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국정원이 스스로를 정권보위부대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정치관여를 금지한 국가정보원법과 공무원의 선거개입을 금지한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범죄행위임을 넘어서, 헌법이 규정한 국민주권원리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중대한 헌법유린 사태라는 점을 우리는 분명하게 직시해야 한다.

이처럼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반민주적 독재정권 시대로 회귀한 국정원의 행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우리 교수들은, 이토록 부끄러운 광경을 제자들에게 더 이상 보여줄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바이며, 정치개입의 전모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의 엄중 처벌, 나아가 정보기관의 권력 남용을 차단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한다.

첫째, 국정원의 부당한 정치개입의 전모, 그리고 이를 축소은폐하려고 시도한 현 정권의 부당한 수사개입에 대하여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사건은 국정원장이 직원 몇 명과 짜고 저지른 개인적인 범죄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과 일부 정치세력이 국가정보원을 국내정치 조작에 동원한 조직적인 국헌문란행위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 하에서 자행되어 온 국정원의 모든 정치개입의 실체가 낱낱이 규명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가 이 사건의 수사에 부당하게 간섭했다는 정황도 의심되고 있는 만큼 현 정권의 부당한 수사 간섭과 축소·은폐시도에 대해서도 그 전모가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둘째, 모든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만 기소하고 이 사건에 개입한 국정원 직원들을 기소유예처분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를 취했지만, 이처럼 국가권력을 동원한 권력형 범죄 사건에서야말로 그에 가담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법적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외에, 정치개입의 조직적인 음모와 범죄 실행에 관련된 국정원 직원들을 비롯하여 모든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고 죄과에 상응하는 처벌을 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

셋째, 국정원의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 국정원의 광범위한 정치개입이 이처럼 과감하게 자행될 수 있었던 것은 국정원에 과도한 권한이 집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을 차단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그러므로 국정원은 물론 각종 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가능하도록 하는 전면적인 개혁이 즉각 시작되어야 하며, 이러한 개혁작업은 국정원의 해체와 폐지를 불사한다는 각오로 착수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넷째,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한다. 박대통령은 대선개입 등 국정원의 국헌문란사태가 지난 정권의 일이었을 뿐 현 정부와는 무관한 일이라도 되는 양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국정원의 대선개입 당시 여당의 후보자로서 적지않은 언급을 했던 박대통령은 결코 이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이러한 모호한 자세는 국정원의 범죄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가로막는 효과를 가져옴으로써 전 국민의 분노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박대통령은 이제라도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국정원에 의해 저질러진 헌정 파괴 범죄에 대한 철두철미한 수사와 국정원의 근본적 개혁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국민 앞에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2013년 7월 5일 국정원의 민주주의 파괴 범죄를 규탄하는 배재대학교 교수 일동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과 여론조작 및 전방위적인 민간인 사찰, 4대강 사업과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에 관한 문건, 반값 등록금 여론차단, 경찰의 선거개입 수사의 축소와 은폐,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불법탄압, 언론의 통제 등, 숨이 막힐 지경의 참담한 일들이 드러났거나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의 헌정질서 유린과 이에 대한 경찰의 수사 축소은폐는 매우 개탄스럽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지시에 의한 정보요원들의 인터넷 상의 여론조작활동은 조직적이고도 교활한 폭거다. 여기에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지시에 의해, 경찰이 중간수사결과를 조작하여 대선후보간 제3차 토론회 직후인 밤 11시에 맞추어 발표를 감행한 것은, 교묘한 불법적 선거개입의 절정이었다.

검찰수사에 의해 이러한 위헌적 범죄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에도, 현 정부의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국기문란을 자행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구속을 반대하였으며, 현 정부의 검찰은 마땅히 감옥에 가 있어야 할 원세훈과 김용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고, 여론조작을 한 범죄자들을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과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조작 발표 사건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이번 대선의 공정성에 대하여 깊은 의문을 품게 되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국가기밀문서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였다. 대화록 공개는 법이 금지한 행위이다. 국가기밀의 철저한 보호를 본연의 임무로 하는 국가정보원이, 위법을 감행하면서까지 국내정치용으로 국가기밀을 공개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국제적 망신과 외교적 손실을 자초하고 국가의 품위를 추락시켰다.

지금 온 국민은 국민기본권을 침해하고 각종 정치탄압과 정치개입을 자행하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무소불위의 반헌정적, 반민주적, 반인권적 행태에 분노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의 국가정보원이, 과거 군사독재 시기에 정권의 하수인이었던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와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현 정부에 준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우리 국민들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남재준 현 국가정보원장의 노골적이고 무도한 국기문란 행위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인지 알고자 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이므로 주권자인 우리 국민들은 이 사건의 진상을 알아야 하며 알권리가 있다.

원세훈과 김용판의 범죄행위는 특정인의 당선을 위하여 대통령 선거에 적극 개입한 행위임이 드러났고, 남재준은 대통령에게 최상급의 정보를 보고하는 대통령직속의 정보기관의 장이다. 그러므로 이번 권력기관장들이 저지른 일련의 국기문란사건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결단코 ‘남의 일’일 수 없다.

우리는 박근혜대통령에게, 권력기관들이 저지른 이 어두운 일련의 사건에 대하여 진상 규명을 지시하고 사건 전모를 대낮 같이 명백히 밝혀 국민에게 보고해야 할 엄중한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국가정보원 등 국가권력기관의 이러한 국기문란 행위를 헌정유린이자, 반민주적이며 망국적인 사태로 보며 깊이 우려하고 있다. 이에 다음을 강력히 촉구한다.